이달의 안성 독립운동가 게시판 내용 보기
2021년 1월 이달의 안성 독립운동가 정주원 선생
- 작성자 : [문화예술사업소] 김대용(031-678-2476)
- 등록일 : 2021-01-19
- 조회 : 705
1907년 9월 죽산에서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일본수비대와 전투를 벌이는 한편 안성·양지·수원 등지에서 의병을 규합하여 대규모 병력을 지휘하였다. 또한 1907년 8월 25일 안성에서 개최된 의병 회의에 참가하였으며, 의병장들과 함께 전국 각지에서 의병전쟁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양지 출신의 임옥여 의병부대와 연합하여 1907년 9월 중순 안성을 습격해 경찰주재소와 우편소, 일본인 가옥과 점포 등을 파괴하였다.
이후 충청도까지 전선을 넓혀 당진·서산 등지에서 의병 전쟁을 전개하였다. 1908년 1월에는 당진주재소를 습격해 큰 전과를 올렸고 다시 죽산·안성·양지 등지로 돌아와 활약하였다. 특히 경기 남부는 물론 충청북도와 강원도를 아우르는 넓은 지역의 의병들을 총 지휘하며, 13진도총대장 명의로 일제에 부역하는 일진회에 격문을 보내기도 했.
1908년 3월에는 죽산군 능촌, 4월에는 양지군 사동과 용인군 요봉골에서 일본군과 접전을 펼쳤다. 그리고 다시 당진으로 건너가 광범위한 지역에서 의병 전쟁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1908년 7월 충청도 해미로 입항하던 중 일본군에게 체포되었다.
1908년 9월 29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았으나 11월 24일 경성공소원에서 종신 유배형에 처해졌다. 이후 일제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 여생을 보내게 되었다.
이후 충청도까지 전선을 넓혀 당진·서산 등지에서 의병 전쟁을 전개하였다. 1908년 1월에는 당진주재소를 습격해 큰 전과를 올렸고 다시 죽산·안성·양지 등지로 돌아와 활약하였다. 특히 경기 남부는 물론 충청북도와 강원도를 아우르는 넓은 지역의 의병들을 총 지휘하며, 13진도총대장 명의로 일제에 부역하는 일진회에 격문을 보내기도 했.
1908년 3월에는 죽산군 능촌, 4월에는 양지군 사동과 용인군 요봉골에서 일본군과 접전을 펼쳤다. 그리고 다시 당진으로 건너가 광범위한 지역에서 의병 전쟁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1908년 7월 충청도 해미로 입항하던 중 일본군에게 체포되었다.
1908년 9월 29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았으나 11월 24일 경성공소원에서 종신 유배형에 처해졌다. 이후 일제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 여생을 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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