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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월정리의 기우제 풍습

일죽면 월정리 마을에는 옛부터 특이한 기우제의 풍습이 지금까지 전하여 내려 오고있다. 가뭄이 심한 철에는 동리 아낙네들이 목욕 재계한 후에 키를 들고 마을 앞쪽다리 개울에 나가 춤을 덩실덩실 추며 개우물에 키질하는 광경은 마치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같으며 그 엄숙하고 장엄하기란 불교의 승무를 연상케 한다.

이런한 아낙네들의 정성이 하늘까지 닿은 듯 기우제가 끝나면 반드시 비가 오기 때문에 그 풍습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안성돌우물

조선 말기 대원군 전성기에 "농악"이 성행하여 일년 사계절중 봄, 가을을 통하여 조선팔도 농악 경연대회가 한양에서 열였다. 대회 목적은 대원군 일생일대의 대역사였던 경복궁 중건에 너무 많은 재정투자와 노력이 투입되므로 민심이 소란해지고 "대원이대감"을 원망하는 소리가 높아짐에 민심 순화책의 한 방편으로 <경복궁타령>을 만들어 부르게 하는가 하면 노역자들을 위안하고자 전통 민속의 하나인 농악 경연대회를 열게 된 것이다.

경연 대회에서 제일 잘하는 농악대는 대원군으로부터 직접 관자기와 상좌, 두레, 농악이 유명했던 것이다.

있는 특권이 있었으므로 당시 대회의 세도가 당당 하였던 모양이다. 특히 상좌 농악대가 특별 출연할 때에는 인근 농악대는 일제히 관자기에 배려를 하며 상좌 농악대를 극진히 대접하였다고 하는 기록이 <<매천양록>>에 비치고 있는데, 세월이 흐르고 문화의 변천에 따라 찬란했던 이 고장 안성농악은 찾아 볼 길이 없고 다만 그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돌우물 두레패 : 현 안성시 석정동 농악대를 말합니다.

태봉산

안성시원곡면 성은리에 가면 태봉산이 있다.

영조 10년(1732) 1월 초1일에 탄생한 웅주이며 사도세자의 동생의 태실을 모시고저 명당자리를 찾기 위하여 유명한 풍수객을 전국에 풀어 찾던 중 한 풍수객이 이곳에 이르러 자리를 정하고 태실을 정중히 모시었다.

그로부터 이 산을 태봉산이라 부르게 된 바 왜정때 왜인들이 주민들에게 명산 꼭대기에 태실을 묻었기 때문에 이 마을 주민들이 궁핍하고 자손들도 잘 되지않으니 발굴해서 버리자고 수차의 감언이설로 협박과 공갈을 하였으나 주민들이 말을 듣지 아니하자 왜인들을 강권을 발동하여 인근 주민 수십명을 강제동원하여 태실을 파서 산기슭으로 굴려 버리고 비석도 묻어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후 40여년간 그대로 방치되었다가 1967년 3월에 주민들이 뜻을 모아 태실과비석을 찾아 통심마을어구에 정결하게 태전을 마련하고 태실을 안치하였으며 비석을 세워 수호하고 있으니 이 태실과 태봉산은 역사와 함께 한 없이 흘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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