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조선전기 단종 때의 충신 충정공 박심문(朴審問: ~ 1456)선생의 충절과 유덕을 추앙하여 제향하는 사우(祠宇)이며, 해마다 10월 10일과 14일에 향사를 지낸다. 이 부조묘는 외삼문을 앞으로 하여 숭의당(崇義堂), 내삼문(內三門), 충정묘(忠貞廟) 등이 차례로 배치되어 있으며, 1904년 처음 세워졌고, 현재 있는 건물은 1980년대에 중건되었다.
숭의당은 종친들의 제사준비와 회의용 건물로 사용되며, 충정묘에는 박심문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외삼문에는 현창문(顯彰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으며, 내삼문에는 경절문(景節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박심문 선생의 자는 신숙(愼叔)이요, 호는 청재(靑齋)이며,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일찍이 학행으로 천거되어 사온서 직장이 되었고, 1436년(세종18) 친시(親試)문과에 급제한 뒤 기주관을 역임하였으며, 함길도 절도사 김종서(金宗瑞)가 육진을 개척할 때 그의 종사관이 되어 야인(野人)에 대한 안무책으로 남쪽 지방의 백성들을 옮겨 살게 할 것을 절도사에게 건의하여 시행하였다.
1453년(단종1년)에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기위해 일으킨 계유정란(癸酉靖亂) 때 김종서 등이 살해되자 이에 크게 분개하여 성삼문(成三問), 하위지(河緯地) 등과 단종 복위를 도모하였다. 1456년(세조2) 질정관으로 명(明)나라에 다녀오다가 의주에 이르러 성삼문 등 육신이 참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음독 자결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며, 정조대에 이르러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공주 숙모전(肅慕殿)에 배향되었으며, 묘소는 고양시에 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