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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삼국시대
    안성시는 고구려,백제,신라의 각축장이었다. 4세기 이전에는 백제지역이었으나 5세기에는 고구려 광개토 대왕과 장수왕 남하정책으로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이때 안성은 내혜홀, 양성은 사복홀, 죽산은 개차산군이었으며 6세기에 신라가 한강유역까지 진출하면서 신라의 영토에 편입되는등 삼국의 세력판도에 따른 변화를 겪었다.
  2. 통일신라시대
    전국을 9주로 나누었을 때 안성은 한주에 속하였으며 경덕왕 때에는 백성군에 속한 현이었고 죽산은 개산군이었다.
  3. 고려시대
    고려초 안성현으로 되었다가 1018년(현종 9년) 수주(현재 수원)에 속하였으며 명종(1171~1197년) 때에는 감무를 두었다. 1362년(공민왕 11년) 안성현이 안성군으로 승격되었다.
  4. 조선시대
    1413년(태종 13년)에 지방제도를 개혁하여 전국을 8도로 나눌 때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편입되었다. 양성은 경기도에 편입될 때 현감을 두었다가 1895년(고종 32년) 지방관제 개정때에 양성군이 되었다. 죽산은 1413년(태종 13년) 죽산이라 하고 현감을 두었다가 1434년(세종 16년)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이속되었고 1543년(중종 38년) 죽산부로 승격되어 부사를 두었으며 1895년(고종 32년) 죽산군이라 하였다.
  5. 근대시대
    1914년 조선총독부령에 의하여 안성·죽산·양성 3개군을 통합, 안성군이 되었으며 안성읍은 1937년 7월 1일 읍으로 승격되었는데 이때 경기도내에서 읍으로 승격된 곳은 수원, 안성, 개성의 세 곳이었다. 1963년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용인군의 고삼면이 안성군으로 편입되어 1읍 12개면 법정리 수193개로 되었다가 1983년 2월 15일 행정구역개편으로 공도면, 원곡면, 일부가 평택군으로 편입됨에 따라 1읍 12개면 188개 법정리로, 1987년 1월 1일 보개면 양복리 일부를 금광면에, 삼죽면 남풍리·동평리·가현리를 보개면에 편입하였고, 1992년 10월 1일 이죽면을 죽산면으로 명칭 변경, 1993년 4월 8일 대덕면 건지리 일부, 대덕면 소현리 일부를 안성읍에 편입, 1997년 6월 6일 대덕면 모산리, 건지리와 소현리 일부, 보개면 가사리와 가현리 일부를 안성읍에 편입하였으며, 1998년 4월 1일 안성시로 승격 (법률 제5458호)되어 3개동 12면을 관할하고, 2001년 6월 1일 공도면를 공도읍으로 승격하여 1읍 11면 3개동을 관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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